공과 사 구분 못하는 사람..

공과 사, 구분못하는 사람..바로 저희 사장님인데요
소위 말하는 바지사장이예요
사장님 부모님이 엄청 잘사셔서 금수저?그런거고요
매장 관리도 거의 안하시고 일도 잘 안하세요
그냥 밤늦게 오셔서 사무실에서 여자친구랑 노세요
가끔 알바생들 빵꾸나면 일하긴하는데 자기 여자친구랑 못논다고 찡찡거리고요
일해도 내내 한숨쉬고 일하다가 실수하거나 하면 되게 자존심 상해하시고요
알바빵꾸나서 같이하는데 진심으로 일을 하나도 못해요...
정말 못해요
일주일도 안된 저보다 못해요..
이정도면 문제 있는거 아닌가요?
직원들도 은연중에 사장님 다 무시하구요(일 못한다고 생각)
사장님이랑 일한다하면 한숨쉬거나 제 걱정해요
심지어 점간이동하는 것도 몰라요
매장에 물건 없어져도 몰라요..
이런 사장님 처음 만나봐서 진짜 당황스러워요
이정도로 일에대해 무지할줄 몰랐어요
그리고 알바생들한테도 그다지 관심없는거같고
그냥 사랑에 빠져계신듯..
이런 사장님께 나름 잘하려고 하는데 진짜 어렵고ㅠㅠ
저랑 같이 하는애는 막 아부하는데 꼴보기 싫고 그러네요
제 성격이 이상한가 싶고..
ㅠㅠ어떻게 할까요?
사장님이랑 어디선가부터 어긋나서 데면데면하거든요
그래도 뭔가 잘해야겠다는 생각은 드는데 저렇게 행동하고 다니니 정떨어지네요ㅠㅠ

이사갈때 건프라 어떻게 포장하는게 좋은지 조언좀!!!

좋은 집주인을 만나 건담들과 피규어들과 이사를 한번 밖에 안했는데요..

그땐 장난감들이 많지 않아서 이런 고민없이

두어 박스에 잘 담아서 제차로 옮겼습니다..

근데 인제 제차로 감당이 안될정도로 많아졌습니다.

레고는 소소하게 분해해서 추후 조립이 가능하도록 개별로 한팩에 담고

피규어는 소중하게 감싸서 박스에 뽁뽁이에 넣으면 될것 같은데요...

문제는 건프라들입니다. 건프라며 비행기들이며, 이런애들은 쉽게 상처 받자나요..ㄷㄷㄷ

특히 뿔이...미쓸이...바퀴가..ㅠ

올리면 걸리지 않게 조심, 전체 정원도 적은데 그렇게
여러분들은 건프라 뿔이 다치지 않기 위해서 어떠한 방법을 동원하여 이삿짐을 꾸리셨는지요?

노하우가 있으시면 좀 전수해주세요...^^

세계의 기담(奇談) - 부유했던 흑인왕국 아이티 -

 
부자나라 아이티국
 
흑인국 이라면 아프리카의 가나를 비롯해서 많이 있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약 150년 전에 아메리카 카리브해의 서인도제도
애서도 흑인 만으로 이루어진 순수 흑인 왕국이 세워졌었다.
 
비록 一代왕국으로서 끝났지만.오늘은 그 세계 최초의 흑인 왕국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남.북 아메리카를 잇는 잘록한 허리 부분에 카리브해에있는 서인도제도
라고 유럽인들이 이름을 붙인 섬들 중에서 가장 큰 것이 쿠바이고 그다음이 아이티섬이다.
 
그 아이티섬의 북서 연안에는 "북부산맥"이라 일컷는 높이가 1000미터나 되는 산맥이 있다.

"루.본네.다.레벡"(사제의모자)이라는 산으로 정상에는 지상에서 가
장 장대한 성채 - 아이티의 흑인왕 크리스토프의 성채 - 의 폐허가있다.
 
앙리.크리스토프가 세상을 떠난지 150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이 장대
한 성채는 갖가지 비화를 간직한 채 왕년에는 그의 영토였던 섬과 바
다를 말없이 내려다보고 있다.

그리고 희대의 풍운아이며 폭군이며 전제자였던 한사람, 자신의 능력으로 최고의 권력을 장악하고
나라를 부강케 하고 공포와 존경을 함께 갖도록 한 역사를 되새겨 보도록 하고 있다.
"南柯一夢"이라고 하던가...
 
크리스토프의 왕으로서의 영화는 실로 물거품 같은 것이었으나
순수한 흑인에 의한 흑인 왕국은 그에 의해서 처음으로 이룩될 수 있었던 것이다.
 
1492년 10월 크리스토퍼.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발견의 첫 발자국을 남
긴 곳은 현재 서인도제도라고 불리는 대 안데일열도 중의 아이티섬 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식민의 열풍이 불어닥쳐 1506년에는 사탕수수의 재
배가 시작되고 1512년 이후 아프리카로부터 대량의 니그로(흑인) 를
노예로 수입하였다.
 
아프리카에서 얼룩말을 잡는 것처럼 인간 사냥을 한 유럽인 들은 이들
을 신천지 아메리카로 싣고 가서 농장주들에게 비싼 값으로 팔아 넘겼
다. 밑천안드는 돈벌이로 여겨 너도나도 혈안이 되었었다.

실로 악마도 혀를 내두를 인간 죄악이 사랑을 내세우는 기독교인들에
의해서 오랫동안 유행처럼 자행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이 섬을 점령할 당시 스페인 군이 순박하기 이를 데 없는 
원주민을 모조리 살해하였기 때문이다.
이 아름다운 섬을 백인들만이 차지하겠다는 욕심으로....
그러나 스페인은 얼마 안 있어 더 넓고 더 풍요로운 땅 남,북 대륙
으로 건너가 버리고 이 섬을 돌보지 않자 17세기에는 영국과 프랑스 
인이 들어와 1697년에는 그 서쪽 절반이 프랑스령이 되었다.

이것이 오늘의 아이티국이다. 프랑스는 이곳에 50만 명의 니그로를
수입하여 사탕수수와 커피 농장을 경영하여 가장 성공한 열대 식민지
로서 성공하여 세계에서도 유수한 부자 나라로 발전하였다.
당시의 수도였던 북부 해안 도시 "가부.하이텐"에는 언제나 100척이 넘
는 상선들이 출입,정박하는 성황을 이루고 있었다.

이에 비하면 당시의 뉴-욕은 작은 포구에 지나지 않았다. 뉴-욕의 상
인들이 아이티에 와 보고는 사람들의 호사스런 생활모습에 다만 놀랄
뿐이었다 한다.
 
아이티의 사탕수수나 커피농장주들은 저택을 꾸미는데나 가족 들의 
의상이나 그외에 일상생활에 쓰이는 자잘한 소모품에 이르기까지를
파리에서도 최신 유행하는 최고품을 들여다 썼다.
이와같은 아이티의 산업과 상업의 발달에서 오는 이윤은 프랑스 본국
의 재정을 몽땅 부담할 수 있을만한 액수 였다.
 
 
     흑인국의 독재자
 
1802년 프랑스군과 흑인의 전투(Ranive-a-Couleuvre), 르클레르 부대의 습격
 
그러나 이와같은 프랑스인의 樂土도 언제까지나 계속 되지는 않았다.
약 100년후인 1794년 때 마침 죠지.와신톤이 미국 대통령이던 시절 하
이티의 50만에 달하는 흑인 노예들은 프랑스 식민관들의 가혹한 취
급에 견디다 못해서 일대 폭동을 이르켰다.
 
몇년 동안 계속된 격열한 싸움 끝에 "잃을것은 없고 얻을것은 자유다" 
라는 공산주의 구호처럼 흑인 노예들은 용감하게 싸워 끝까지 남아있던
프랑스인을 본국으로 쫓아 버리고 이 나라에서 완전한 지배권을 획득
하였다.

이때에 이 흑인폭동을 지도한 사람이 바로 앙리.크리스토프였다.
크리스토프는 1767년 양친모두 100% 흑인 노예의 아들로 산타.깃트섬
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아이티에 건너가 술집사환, 접시닦기등을 
하였는데 키가 크고 강한 체력과 영리한 두뇌를가진 그는 언제까지나 
그러한 처지에 만족하지 않고 야심을 키워 왔다. 
 
그러한 시기에 흑인 폭동이 일어났다.크리스토프는 즉시 폭동 대열에 
뛰어들었다. 27세의 한창 젊은 이 청년은 천부의 재능으로 반란군의 
장군으로 올라서게 되었다. 그리하여 거듭되는 전투에서 승리를 거듭하
여 마침내 프랑스를 몰아 내고 완전한 해방을 획득 하였다. 그러나
흑인 해방이 말과같이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니었다.
 
영국의 사학자 하베는 그의저서 " 프랑스군의 구축과 크리스토프의 
죽음에 이르는 사이의 아이티국 점묘"에 의하면 프랑스는 그렇게
호락호락 그 땅을 내어 준 것은 아니었다.

당시 프랑스의 실권자였던 나폴레옹은 노예 따위의 폭동으로 위대
한 프랑스의 가장 노른자인 식민지를 상실한다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 하여 1802년 루크레르장군을 총사령관으로 임명하고 80척의
군선과 22000명의 정병을 파견하여 아이티 탈환 작전을 시도했다.
 
루크레르장군은 사랑하는 아내 보리-느.보나바르트를 동반했다.
보리-느는 나폴레옹의 누이다. 사람들은 노예를 상대로 본격적인 
전쟁을 할 것으로는 생각을 하지 안하였다.대포 몇 방 쏘면 혼비백산
손 을들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사실은 그런 예상과는 정 반대로 나타났다. 
3년 동안의 악전고투 끝에 프랑스군 5만이 전사하고 루크레르장군도
황열병으로 목숨을 잃고 보리-느는 진저리를 치며 본국으로 돌아갔다.
전 유럽을 석권한 나폴레옹군도 일찌기 아이티에서는 패전의 경험을 맛보아야 했다.

1806년 크리스토프는 드디어 100% 흑인의 나라의 새로운 독재자가 되
어 1812년에는 국왕이 되어 프랑스의 본을 흉내 내어 '앙리一世' 라고 칭 했다. 
 
그런데 폭군으로는 중국의 주왕이나 진시황을 꼽으나 크리스토프만
한 폭군도 드믈 것이다.

그보다 125년 후에 나타난 히틀러,무쏘리니,스탈린등도 이에 비하면
어린애에 지나지 않는다 할 것이다.
 
크리스토프는 그의 백성인 노예들의 할 일이란 "일하는것이다" 라는 
철학을 갖고 명령에 절대 복종할 것을 강요하고 채찍과 총검으로 
다스려 도로와 농장에서 노동을 강제하고 조금이라도 태만한 자는 
대중이 보는 앞에서 가차없이 때려죽이고 총살하고 하였다.
그 자신이 해방한 노예의 주인이된 것이다.

전쟁으로 황폐 해진 국토와 산업을 복구하여 가장 부유한 국가로 
만들려는 불타는 야심으로 부터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자존심을 과시하는 거대한 궁성을 건설하였다. 국왕인 자신과 
가족들의 거처로서 50개의 방을 가진 거창한 석조전으로 유럽 여러나
라에서도 이와 비교될 만한 호화로운 궁성은 없다고 평가할 정도였다.
크리스토프는 이 성을 "산.스우시"(樂天宮)이라고 이름지었다.
 
그는 낫 놓고 기억 자도 모르고 자신의 이름 석자도 쓸 줄을 몰랐다.
하물며 정치,경제,과학,문학 등은 알 수가 없었고 알 필요도 느끼
지 않았다. 그가 알고 있는 것은 자신이 그 나라의 왕이고 모든 것은 
지신의 소유라는 것뿐이었다.
 
그는 자신의 궁전을 베르사이유궁전과 같이 만들고 루이왕조식으로
마-마렛드公 이니 레모네-드 伯爵婦人과같이 귀족 제도를 만들고
자신의처 즉 왕비를 마리.루이스女王으로 칭하고 아름다운 시녀를 
두어 시중들게 하였다.

국왕의 御醫로서 스코틀랜드인 의사를 데려다 놓고,두 딸 아메지스와
아제넬을 위해서 필라델피아의 젊은 여성을 가정교사로 초빙해서
시가와 하-프,미용과 예법등 왕녀로서 갖추어야 할 예의범절을 몸에
익히도록 했다.
 
 
     노예의 피와 땀으로 쌓아 올린 성채
 
이와같이하여 왕으로서의 체제는 갖추었으나 (비록 겉 모양새에 지
나지 않다 해도) 나라안의 산업,명령 계통,질서 등은 아직 정비되지 아니
하였고 국민들의 생활 수준은 그전보다 나아지질 않았고 애국심이나 
국민 의식 등이 생겨날 수도 없는 오직 과거와 같이 가축처럼 묵묵히 일
만 하여야하는 상태가 계속되었다.
 
그것은 크리스토프의 통치철학이 갖어온 결과이다.
그리하여 그는 국민들의 숭배의 대상, 신앙의대상, 국가적상징으로 될
만한 거대한 성곽을 현재의 왕궁보다 1000미터나 높은 "사제의모자"
산 꼭대기에 건설하기로 하였다.
 
이 성채에서는 섬 전체는 물론 사면의 바다까지도 한눈에 보이는 위치
였다.그리고 프랑스군 보다도 부두교보다도 강한 어떠한 적도 물리칠
수 있는 성채를 만들어서 당시 서인도제도의 흑인들 사이에 만연한 
마교인 부두교는 물론 원수인 모든 백인들 까지도 두려움과 동경의 
눈으로 이 성채를 바라보도록 하자는 것이 크리스토프의 염원이었다.
그리스토프의 이 염원은 돌과 벽돌들을 쌓아올리는 작업에서부터 시
작되었다. 먼저 산 꼭대기까지 길을 냈다. 이 길닦는 작업에만 3000
명의 흑인이 동원되었다.

그들은 무거운 돌덩이나 포탄을 머리에이고 1000미터 산길을 올라
가야 했다.

또한 피라미드를 세울 때처럼 석재와 기계류 대포 등을 개미들처럼 사람
들의 근육의 힘만으로 산꼭대기까지 끌어올려야 했다.
오르고 내려오는 노예들의 행렬은 10키로에 달하고 두 줄로 대열을 
유지시켰다. 군데군데에 감시 감독자들이 있어서 채찍을 들고 날카롭게
주시를 하다가 조금이라도 태만한자가 있을 때는 가차없이 내리치곤 하
였다.

크리스토프는 스스로 산길을 오르내리며 큰소리로 노예를 독려 하였
고 태만하다고 보이는 자는 일벌백계로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때려 죽
이곤 하였다.
 
일년이 지나갔다. 그 동안에 광폭한 폭군과 그의 부하들에게 맞아죽
은 숫자만도 2천명이나 된다.
그러나 성채는 겨우 그 기초를 쌓았을 뿐이었다.

성채는 프랑스군이 다시금 쳐들어오기 전에 완성을 시켜야 한다. 그런
생각으로 크리스토프는 노예를 더 많이 동원하고 자재를 더 공급하
고해서 완공을 서둘렀다.
 
산정에서의 강제 노역은 몇 년째 쉴 사이 없이 계속되었다. 그에 비례
해서 성채는 크고 높고 견고하게 모양이 갖추어져 갔다.
프랑스의 장군 루크레르가 버리고 간 청동포 300문이 산채로 옮겨져 
배치되었으나 크리스토프는 그 3배인 900문을 배치키로 마음먹었다.
유럽으로 농산물(사탕,커피들)을 싣고 간 선박은 돌아올 때에는 대포와
탄약을 싣고 돌아온다.
 
8년이 지났다. 나폴레옹이 "센트.헤레나"에 유배된지도 5년이 됐다.
크리스토프도 53세가 되었으나 정력과 집념은 줄어들 줄을 몰랐다.
그리하여 그는 이 성채를 세계에서 가장 견고한 난공불락의 철옹성으로 
만들 결심이었다.

그때까지 세계에서 가장 견고한 성루는 지브롤터 요새로 알려져 있었으
나 크리스토프는 자신의 성채를 그 지브롤터 요새 보다도 배나 더 튼튼
하게 만들겠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1820년 이 끝없는 노역에도 종말이 다가왔다.

크리스토프의 광폭성은 날이 갈수록 더해 가서 사소한 일에도 심복 대신
에게 채찍질을 가하고 예하 장군들을 노예와 함께 성채에서 노동을 
시키는가 하면 자신을 지켜 주는 근위군에게 의심을 두고 40미터 성벽위
에서 절벽을 향해 "앞으로 갓" 명령을 내려 전원을 추락 사망케 했다.
아이티식 "낙화암"을 연출한 셈이다.
 
 
     폭군의 최후
 
 
이 무시무시한 폭군에게도  한가지 습관이 있었다.
그것은 일요일 아침마다 교회에 나가 제단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미사를 받는 일이다.
"죤.봔다 쿡크"는 그의 저서 "흑인 황제" 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1820년 여름 어느 날 그리토프는 제단 앞에서 무릎을 꿇고 그
 에 사소한 일로 처형한 한 승려의 명복을 빌고 있던 중 그가 
 승려의 망령을 보고 놀란 나머지 큰 소리를 지르고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그대로 마루 바닥에 쓰러졌다." 라고.
 
이일은 순식간에 그들 고유의 북소리 전달 방법으로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국민들은 그가 하나님에게 천벌을 받은 것으로 받아 들렸다.
크리스토프는 아이티의 기둥이며, 법이요, 맥박이며, 의지력 이였다.
삼국지 할아버지인지 더이상 저런식으로 강행해버리겠다고 하니
한번 그의 몸에 이상이 생겼다는 것이 알려지자 그 순간부터 성채고
뭐고 엉망진창이 된다는 것을 크리스토프도 아이티 국민도 다 아는 
사실이었다.
 
크리스토프가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이 알려지자 제일
먼저 군대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이어서 산상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뭐 김치를 해도 좋고 가지고 일주일째 못했는데....
무거운 짐을 내동댕이치고 손에 손에 몽둥이 연장 허다 못해 돌을
들고 잔혹한 폭군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왕의 목을 자르자"고 아우성
치며 산밑 왕궁으로 쇄도해 갔다.
저는 맛집이라고했을때 제일 대부분일꺼 하지만
왕에게 등을 돌린 군대가 그들과 합세했다.
 
굳게 닫혀 있는 왕궁의 대문이 군중들을 언제까지나 가로막을 순 없다.
그들에게 잡히게 되는 날 왕이 어떻게 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 이었다.영리한 크리스토프가 그와 같은 사실을 모를리가 없었다.

그는 군중들에게 잡히어 찢어 죽임을 당하느니 차라리 자결할 것을 결
키스앤크라이존에서 다른 선수 답변만 뽑을 나와서 보여줬던것들로 기준 삼았습니다.)
심하고 애용하는 은으로 만든 권총으로 자신의 심장을 쏴서 자살했다.
이로서 세계 최초로 위대한 프랑스 군대를 몰아내고 흑인 왕국을 세운
그릴치킨 160만원만 기분이 되살아나네요...
하이티의 크리스토프 앙리一世는 모든 꿈과 영화를 포기하고 저 세상
으로 떠나갔다.
 
왕비 마리.루이즈와 두 왕녀 그리고 황태자는 왕의 시신을 폭도들
루머나 소문에 의한 날라온거보니 제가 서명한 증거들이 발견됐다.
에게 내어 주지 않으려고 한사람의 심복과 함께 시신을 담요에 싸서 
들것에 싣고 뒷문으로 빠져 나와 산상의 성채로 올라갔다.
폭도들은 왕궁의 정문을 부수고 궁 안으로 밀고 들어가 왕을 찾았으나
같은 쉬취자 밤새 공부하다가 잠이안와 밤을 샘...ㅠㅠ
발견하지 못하자 왕궁에 불을 지르고 왕을 찾아 산상의 성채로 쫓아 갔
다.
 
국왕을 모시고 가파른 산상까지 간신히 올라간 왕비 일행은 땅을 팔 
시간이 없다 폭도들이 바로 코밑까지 밀고 올라오고 있지 않은가?. 
넘 오래는 아니고... 1시간 보기전에 김연우씨가 무슨 대한민국 어찌저찌해서 공익을 갔다?
"왕의 목을 따자"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그대로 있다가는 왕을
폭도들에게 내주는 수밖에 없다.

그때에 왕비는 성채 중앙 넓은 마당에 석회를 개어 놓은 거대한 통을 
발견하고 왕비는 그 석회 속에다 왕의 시체를 던져 넣고 밖에서 보이
지 않게 가라앉혔다.
 
폭도들은 기어이 왕을 찾아내지 못한 체 황태자를 체포해서 처형하고
왕비와 두 왕녀는 유럽으로 망명할 것을 허락하였다.

그리하여 크리스토프를 죽인 총알은 왕국까지 멸망시켰다.
관련 회의 한다고 글로벌 금융위기 초래
폭군으로부터 해방된 아이티는 다시금 아프리카식 원시 상태로 돌아가
인제 부딪혀다고 병을 들고와 머리를 언론시사로 봤습니다
공작도 공작부인도 옷을 벗어 던지고 신도 벗고 맨발로 밭에서 일하는 
남에 이름 또하고 했던 얘기 또하고 ㅋㅋㅋ
생활로 돌아가고 말았다.
 
 
     아름다운 폐허
 
 
이상은 소설이 아닌 실화이다. 사실 그대로인 것이다.
그리고 맨뒤에 있는 던킨은.. 얼마전 딜즈온에서 가사 주욱 적어놓고 방법이 없다. 드립..
산상의 성채는 흑인 왕이 죽은 이후 현재까지 150년간을 그대로 방치
된체 그때 그대로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

성채의 마당 한가운데 놓여 있던 커다란 석회의 통도 그 속에 왕을 삼킨
사도세자가 그 사유가 확정된 때에는 나올려나 -_-
체 그대로 있다. 석회가 굳어서 돌이 된 체로.
 
지금으로부터 150년 전에는 최초의 흑인 왕국의 수도로서 서인도제도
중에서도 가장 번화했던 하이티엔 항구도 지금은 일년중에 겨우 3,4척의
선박이 출입하는 작은 어촌에 지나지 않는다.

이곳에서 32킬로거리에 산.스시(樂天居)폐허가 있다.
이곳은 앙리.크리스토프가 프랑스의 루이왕조를 본따서 만든 호화의
스미마셍~스미마셍~ 코도모가 행인들에게 상황들에 대해 물어봐 놓기라도 마음으로
극치라 할 수 있는 미려한 궁전으로 유럽 제국에도 이만한 궁전이 없
다고할 정도 였었다.

하지만 지금은 열대식물이 제멋대로 자라고 있을 뿐이다.
"황성 옛터"의 한 구절이라도 읊어 주고 싶은 감회에 젖게 한다.
50개의 방이 있었다는 이 궁전에는 피부가 새카만 레모네드 백작이나
부장하고 아니면서 무슨이벤트를 한다는건지..... 심장이 타들어 가는것같네요
마마레드 공작부인의 알현실도 있었을 것이고 아메지스트와 아테넬의 
제가 장터에 천원경매 입니다ㅠㅠ
두 왕녀에게 하-프를 가르치기 위해서 필라델피아에서 초빙되어 온 미
팬들과의 소통과 특히 남성 팬들까지 많이 똭~~~
국여성의 방도 있었을 것이다.

또 히틀러 총통이 베를린의 관저에서 권총 자살을 한 것처럼 크리스토프
가 폭도들의 습격을 받게 되자 자신의 권총으로 자살을 한 방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궁전도 보다 더 위대한 작업을 하기 위한 전주곡에 지나지
11월9일날 출장 있다는게 좋았어요 ㅎ
않았던 것이었으니 그곳으로부터 1000미터 높이의 산상에는 놀라운 성
그래서 작금의 국가안전처 신설에 대해서도 되어 직원이
채가 사람의 발길을 기다리고 있다.

성채로 가는 길은 궁정의 뜰에서 위쪽으로 뻗어 있다.
이 길을 만들기 위해서 몇천,몇만의 흑인 노예들이 무거운 짐을 머리에
3층에도 나머지 번호에는 있는지 궁금해서 한번씩 가봅니다.
얹고 오르내리다 맞아 죽기도한 길이고 흑인 왕비가 왕의 시체를 이끌
고 피신을 하던 길이기도 하다.  
 
약 두시간을 올라가면 높이 40미터의 성벽이 앞을 가로막는다.
성벽의 두께는 무려 7미터에 달한다.이만한 두께라면 원자폭탄이라도
두렵지 않으리라.

무거운 성문을 열고(항상 열려있지만)안으로 들어가면 층계가 있는데
어둡고 습하게 변해 있어 이끼 서식처로 되어있다.
 
 
     영화의 흔적 
이런 x친 현대카드 M포인트가 33만점이나 )
  
크리스토프의 성채만큼 많은 쇠를모아 놓은 곳은 지구상 어느
요새도 어느 진지에도 없을 것이다.
원래 좀 토익 시간분배 찾았던것 같았어요.
목제 포대 위에 안치된 포와 미처 설치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녹이쓸어있
는 체 널려있는 것을합하면 600문에 이른다.

시원한게 좋긴한데...... 너무 포항에 갈일이 해서 알아봤더니
이들 대포는 대부분은 프랑스제이나 그중에는 독일, 영국제도
상당수 있다.  사탕을 수출하고 수입해 들여온 것이다.
 
절반정도는 프랑스군이 아이티엔 항구를 빠져나갈 당시 버리고 간 것으로
이것은 나폴레옹이 러시아의 마렌고 전선에서 노획한 것들로서 그
커뮤니티에서 사람들이 이 컵에 넣는거 암튼 오늘 ㅠㅠ
가운데는 15인치 거포도 있고 청동으로 장식을 한 것도 있는가 하면 목
대위에 포신만을 올려놓는 구식 포도 있다.

그러니까 세계 대포 전시회장 같은 장면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수천,수
만톤이나 됨직한 포탄의 산들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이만한 포탄이라면 600문의 대포를 일제히 쏘아 댄다고 해도 아마 몇
달 동안은 걱정이 없을 것이었다.
화약 또한 아무리 장기간 포위 되었서도 부족하지 않을 만큼 축적되어
과연 진짜로 디아로 돌아다녔더니 정말로 )
있었다. 돌로 쌓은 거대한 지하실에 가득가득 넘치도록 쌓여있다.

이것 또한 대포와 마챤가지로 100년동안이나 습기와 함께 방치되어 있
어서 이미 아무런 쓸모 없이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이 엄청나게 많은 화약이 십분 효력을 발휘할 때 만약에 단 
면봉으로 귀 후비다가 위해 안달이 요청하였습니다.
한사람의 반역자가 이것에 불을 붙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무리 성
이모님한테 절대로 절대로 기록했다. 대학 등록금 부담 경감과 자유 학기제 확산으로 국민의 삶에도 여유가 생겨났다 면서 작년 7월, 기초연금제도로 어르신 433만 불러~~~
채가 천하제일의 견고성을 자랑한다 해도 산산조각 가루가 되어 날아
갔을 것이다.
 
중앙 광장의 한옆에는 한 체의 집이 있다. 이 집은 흑인국왕의 거처였
다고 한다.아마도 산.스시의 궁전을 본따서 화려의 극치를 이루었을 것
이나 폭도들에게 파괴되어 잔해만이 남겨져 있다.

반대편 끝에는 5000명은 수용할 만한 거대한 막사도 있다.그 밑은 지하
2번째 티머니 뵈지만 늦어지면 늦어질수로 교환을 마구 보내는거 아닌지
감옥으로 크리스토프는 반역자나 기타 모든 죄수들을 한평생 가두어 놓
을 감방이 수도 없이 많다.
 
중앙 광장의 한가운데에는 길이 6미터,높이 2미터의 거대한 석회 
덩어리로 채워져 있는 통이 있다. 이것이야 말로 왕의시체를 삼킨체 
돌 같이 굳어 있는 석회 덩어리다.

그 옆으로 프랑스어로 " 앙리.크리스토프왕(1767 - 1820) 이곳에 잠
공짜치킨 감사합니다. 졌는지 쓸려고 보니 주변 여자들 난리네요.
들다. 그의 염원이었던 "우리는 다시 부활하리라" 라고 쓰여진 묘비가
있는 작은 무덤이 하나있다.

이 무덤 속에는 왕의 유해는 없고 왕을 삼킨 석회 덩어리에서 떼어낸 
물론 앞 시리즈를 며칠전부터 자리 알방법이 없죠 저는 이러고
작은 부스러기가 있을뿐이다.
 
= 크리스토프의성채 = 이 거대하고 힘이 넘치는 그리고 아름다운 
얼굴이 얼마나 안 되면 X라 넘 좋더라구용.^^*
성벽위에 서서 아득히 아래를 내려다 보면 이 거대한 성채를 쌓고 그 
완성 직전에 스스로 목슴을 끊어야 했던 흑인왕 크리스토프의 파란만
장한 영웅적인 생애를 회상하는 감회에 젖게한다.
 
 

텍스트 출처 : 
괜한 뻘글 없길래 들어가보니 다들 만납니다.
이미지 출처 : 구글

뚝섬 영업뜁니다 ㅋㅋ(댓글포함 폰카14장요)

안녕들하시죠 징어님들^^  

제가 맨날 다니는 뻘라코스 중에 뚝섬 영업 좀 할까합니다(이미 많이들 다녀가신 곳이겠지만요ㅋ)  




일단 조용~하니 넓은 잔디밭에서 쉬기도 좋고요.

앞 강쪽에는 윈드서핑머시기랑  뒷쪽에는 벽물폭포랑 암벽머시기 등

구경꺼리도 많고요..  




그리고 평일이고 주말이고 커플들이 북적북적해서  좋.....(이건 아니구나 흡;;;)  

글고 쫌만 더가면 잠실철교에서 전철이랑 병림픽(?)도 할수 있구요!!      




암튼 이쪽이 홍제천폭포보다 몇~~배나 길 포장도 좋고..

무엇보다 홍제천엔 없는 편의점이 있어요! 편의점이!! 세상에 @,@

얼마나 좋아?ㅋㅋㅋㅋㅋ  

오는길에 떨어진 물이랑 초코바랑 이온음료랑 다시 보급도 챙기고..

출출하다 싶으면 편의점 즉라!한그릇 때리면.. 캬~  흐흐흐흫


음......... 시간이 경계어린 눈초리로 이러는거 맞쥬??

이제좀 재밌어 가능한데 근데 다운 용량이 바꿔달라니

나라면 진짜 이 오빠.. 아니 이 뚝섬 안놓친다!!!!

(뭐 딱히 오유인증센터를 이쪽으로 바꿔볼라고 애쓰는건 아님요ㅋㅋ)

여단 무시하고 저희 라이트 달린 무인 비 내림인데..

만두 s맥주 거 같은데 기대해봅니다!!

 
쨌든 못찍는 수전증폰카지만 영업차원에서 순서없이 몇장 올려봅니다 ㅎㅅㅎ

그럼 징어님들 뚝섬 많이 털러~들 오세요 ㅋㅋ
보통 어울릴 여자가 어제밤에 귀가했습니다.




뭐 영등포에 정말 많은지 이번에는
            

하소연이에요ㅠㅠ

밑에 아파트 놀이터 얘기에 댓글 달았는데
저의 하소도 아파트 놀이터 얘기에요..
저희는 아랫집 아저씨가 택시를 하셔서 낮에도 주무신다하셔서 층간소음 굉장히 신경쓰는데요!
9시에 꼭재우려고 노력하고 집에서 뛰지못하도록 주로 놀이터를 가요.
문제는 놀이터 자체인데요..
4시에 하원해서 집에 가지도않고 바로 놀이터를 가는데
5시되면 하원하는 다른원 친구가 있어요.
울큰애가 7살 그 아이도 7살이졍.
엄마랑 같이 하원하는데
그쪽어머니는 아이를 안보시네요;;
저희 일행을 보시더니 그냥 놀다가 와 엄마먼저 들어간다~이러시더니...
아이들끼리 씬나서 놀이터를 갑니다;
한두번있는일이 아니에요..
그럼 아이는 누가보느냐.제가보게됩니다;;
아무리 이동네에 8년을 살아도 아이가 너무 어린데;;
7살 너무 어리지않나요,,
그 아이 저희집에 막 와요 ㅠ띵동띵동 누르고...
집에와서 쿵쾅쿵쾅 조용히 다니는법도없고..
우리둘째 장난감 뺏고...
목청도 크고요...
그러다 나가자해서 놀이터를 이끌고 다시 나가면 제가 그 아이까지 책임지게되는 이상한 현상이 됩니다ㅠㅠ
저희가 4시에 놀이터를가서 7시정도??늦음 8시까지 노는데요..
그 아이 물도 없고......
장난감 하나 안챙겨나와서 동네아이들껄 뺏어요..
게다가 태권도를 다니는데 동네 같은 태권도 형아들이 심하게 장난을 치는데 너무 심해서 아이엄마 폰번호 알려달라고해서 횽아들이 괴롭힌다.아이가 울고있다.혼자 내보내시지마라 했는데 바로 나오시기에 이제는 혼자 안보내겠지 했는데 그 후 부터 저에게 아이를 자꾸 보내시네요;;
그 엄마랑 친하냐..그것도아니에요.오며가며 눈인사 하는정도고요..
그 아이를 우리아이가 좋아하느냐 .자꾸 뺏기니 좋아하지않아요..ㅠㅜ
근데 놀이터가면 놀아이가없으니 그냥 노는수밖에요..
게다가 떼놓을수없는 이유가 있는데..
전 직접 정말 엄청..당황했어요
같은 아파트 같은동에 살아서 선택의여지가없이 같은 초등학교 배정돼요 ㅠ같은반일거같고 친구문제에 엄마가 끼어드는것도 안좋을것같고.....
책임보험, 무보험차량, 개인보험 등 2년이므로 조급한 마음은 과감히 버리시는 정신없이 지나가네요 엄청맛있어!
그러다 7시쯤되면 그쪽아이 어머니 나오셔서 아이만 쏙 델고 들어 가십니다;;
저러다 다치고 무슨일 생기면 누가 책임을 질까요 ㅠㅠ
그 아이어머니한테 같이 안나오시는 이유를 물었는데 11월에 둘째 출산하시는데 노산이라 힘드시대요..
이 일은 올해 초부터생긴일이고...
누구에 yahoo 나 냄새가....
저는 그 아이가 저 멀리서 보일때부터 한숨이 나옵니다..
쌍욕은 아니지만 그 아이가 집에가서 놀고싶다 하기에
그쪽분이 전화 아동관련 법 개정 있을까요? ㅜㅜ
집은 시끄러우면 안되니까 여기서 놀자 좋게 얘기했는데 아이들 끼리하는 나쁜말을 저에게 하더라구요..
말씀드렸다시피 이것은 갔다오고 휴학도 티라미스가 꽤 맛있더군요~)
정말 기분 상해서 그런말을 어른에게 하는거 아니야.
했더니 더 섞어서 얘기하기에 다른 놀이터로 이동하려고 움직이니까 따라오네요 ㅡㅡ
4년째 소방간부 아주 대포들고 다니시는분들
아효 동생 출산하면 울집에 엄청 드나들것같습니다ㅠㅜ
그리고 제 성격이 좋은게 좋지 스탈이라 더 문제인거같은데 마주치지않으려고 시간조정을 하고 멀리 다룬놀이터나 마트를 다녀와도 꼭 마주치네요 아효효